하얗고 얇은 손으로 힘껏 쥔 목검이 하늘을 향해 뻗었다. 착실하게 밟은 전각, 미력하게나마 오러가 실린. 그 손보다 더욱 새하얀 머리카락이 검은 도복 위에 헝클어져 난을 수놓은 듯이 보였다. 천무문의 마당, 전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고고하게 서있는 라비엘은 거친 숨 몰아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써러진 것은 외눈의 사내였다. 눈...
발에 채이는 호박이 애꿎다. 본래의 주황빛을 잃고 어둠에 물든 호박들은 썩어 검푸른 색을 띈 지 오래, 최소한의 짐만을 들고 발을 재촉한다. 지반이 무너져 온전치 않은 피난길, 실린 여왕과 요즈족의 환술사가 길을 이어주지 않았다면 이만한 인원이 여즉까지 살아있을리 만무했다. 두 번의 습격이 있었으나 부상자만이 존재했고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늘 높게 ...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온다. 얇은 가지에 붙어 기나긴 겨울의 모진 바람을 이겨낸 봉오리들이 하나둘 꽃을 피워낸다. 한 송이씩 피어나는 꽃들은 머지 않아 천하를 덮을 것이다. 백 년 전의 화산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높게 쳐줘봐야 한 그루의 나무에 핀 설매 몇 송이에 불과하지만. ' 아무렴, 멀었지. 백 년 전의 화산에 비하면 한참 멀었지. 녹초가 된 ...
시야가 흔들린다. 세상을 담아내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자신하던 외눈은 안개낀 하늘만 담아내고 있다. 눈 앞에 선 인영이 순식간에 가까워진다. 검을 들었다. 막아낼 수 있다. 피할 수도 있다. 단순히 내려찍는 검로. 저사양의 시각이라도 투로는 읽힌다. 천하무쌍, 희대의 사기 스킬이라 자부하던 과거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했다. 그 자의 검은, 그 자의 생은...
"사왕이다!!" "명천마!!!!" "케케륵케르!!!" 광장은 나를 반기는 이들과 목소리로 가득 찼다. 머리색도, 피부색도, 종족도 다양했다. 당연하다는 듯 나를 부르는 호칭 또한 하나에 국한되지 않았다. 25층에서 나오지 않은지도 한 달 지났던가. 랴오판의 얼굴이 무척이나 반가운 것을 보면 한 달은 족히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부군과의 데이트가 예정되어있음을...
쿠키런 킹덤, 라떼에슾 (사제 if) https://bakamory-sb.postype.com/post/9304973 1차 창작 GL https://bakamory-sb.postype.com/post/7129586
한 잔의 에스프레소. 칠흑같이 어둡고 쓰디쓴 향을 뿜는 음료를 나는 그저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사왕 에디션(화이트 모카 프라푸치노 벤티 쿼드라 자바칩 반반 초코칩 드리즐 추가)을 맞은 편에 놓고선 자리에 풀썩 앉는 이단심문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만을 표하기가 쉽지 않았다. 천진하게 웃는, 어린애같이 순수해보이는 낯짝에 어찌 침을 뱉을까. "아핫, 사치...
오랜만에 방문한 22층은 여전히 하얗고 차가웠다. 설원의 붉은 점, 홍색의 모란만이 고요히 피어있었다. 이 곳에 그가 있었으며 여기에 잠들었음을 증명하듯 고고히. "사왕, 명천마. 천마 소백향의 제자 김공자. 스승님을 뵙습니다. " 꿇어앉아 포권을 취했다. 흑색의 도복을 입은 일천의 무인이 꿇어앉았다. 무릎이 눈 쌓인 바닥에 닿아 사박, 하는 소리가 났다....
[당신은 죽었습니다.] [24시간 전으로 회귀합니다.] [당신의 시간선이 끝납니다.] ['어느 회귀자의 사랑(EX)'이 발동합니다.] "김공자 헌터! 지금까지 봤던 것중 가장 바보같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독사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아하핫!"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이단심문관의 멱살을 잡은 독사의 모습이었다. 백작은 부채로 입을 가리고...
오랜 벗에게. "빛 마법은 정말 도움이 안 됩니다. " 처음 공화국의 학교에서 만났을 때, 빛의 신의 선택을 받은 기사라 떠받들어지던 마들렌을 쏘아보며 에스프레소가 한 말이었다. 어두운 피부, 안경, 누군가를 비웃고 있는 것이라 오해할 것같은 반쯤 감은 눈을 가진 그 쿠키는 학교에 있는 동안 자신의 급우는 물론 동기, 학우들, 교사들에게까지 불만스러운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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